나도 왕년엔 얼굴에 모공이 안 보였다네
Posted 2008년 03월 25일 11시 03분, Filed under: 일상주말에 오랜만에 동호회 친구들을 만났다. 2002년 부터 시작되어 길고 가늘게 이어지고 있는 만남. 자연스레 나이 얘기가 화두로 등장했고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삭았다'며 킥킥대는 와중에 한 명이 나를 가리키며 이런 말을 한다.
"얘도 예전엔 얼굴에 모공이 안 보였거든."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었으나 내심 기분이 좋았다. 한때 내 피부가 그렇게 좋았던가? 아무렴 좋기야 좋았지, 들인 돈이 얼만데.
그러니까 이야기는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상물정 모르던 20대 초반, 길에서 만난 잡상인에게 한번 붙들렸다하면 허접스러운 영어 교재에서부터 수상한 스쿠알렌에 이르기까지 마냥 혹해 냉큼 사버리기가 일쑤였던 시절.
어느날 사촌들을 만나러 명동에 갔다. 길 한복판에서 깜찍한 의상을 차려입은 여성들이 사탕을 나눠주고 있었다. 놓칠새라 그쪽으로 달려갔더니 무슨 이벤트 중이라며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으라고 한다. 이벤트? 눈을 반짝이며 또박또박 적고는 의기양양하게 사탕을 받아 돌아왔다. 그것이 당시 새롭게 떠오르던 영업 술수였음은 까맣게 모른 채.
며칠 뒤 전화가 왔다. 무료 피부관리 이벤트에 당첨이 되셨으니 방문을 하라 한다. 피부 관리! 게다가 그곳은 제법 유명한 ㅇ그룹의 계열사였다. 나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좋아라 달려갔다. 당시 내 얼굴에는 사춘기 내내 났다 하면 짜고 뜯었던 여드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ㅇ그룹의 피부관리센터에서는 그런 내 얼굴에 정성스레 마사지를 해주고 피부 상태에 대한 진단까지 내려주었다. 그리고 시작된 그녀들의 립테크닉. 그제서야 나는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아직 탈출할 기회는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녀들의 말발은 너무나 강력했고 고운 피부를 갖고 싶었던 나의 욕망은 마지막 탈출기회를 저버렸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신용카드를 만들었다. 아마도 24개월이었을 것이다. 최장 할부 개월 수 만큼 죽죽 늘여서 결제를 했다. 그리고 2년 가까이 매주 한 번 씩 그곳에 가서 온갖 종류의 팩을 동원한 마사지를 받으며 아침 저녁으로는 10종 이상의 스킨, 로션, 세럼, 에센스, 크림, 화이트닝 따위를 얼굴에 발랐다. 과연 피부는 점차 좋아지기 시작했다. 몇달 만에 만난 동아리 선배가 나를 알아보지 못했고 친구들은 연신 내얼굴을 만지며 '완벽한 중성피부'라고 부러워했다. 참으로 악랄했으나 효과만큼은 확실했던 ㅇ그룹의 피부관리센터였다.
그렇게 2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자 환상적인 립테크닉을 구사하던 그녀들도 내 피부에 대해 더이상 토를 달지 못했고 그제서야 나는 그녀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완벽한 중성피부'는 그 뒤로도 몇 년간 유지되었고 만나는 사람들은 종종 내 피부를 칭찬했다. 그때마다 마음 속에선 '그럼, 들인 돈이 얼만데'하는 생각과 함께 ㅇ그룹의 피부관리센터에 대한 애증이 되살아나곤 했다.
한달 쯤 전이었던가.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데 헬스클럽 로비에서 웬 여자가 무료 비비크림 증정 행사라면서 샘플을 나눠주며 전화번호를 받고 있었다. 극구 사양하는데도 '정말로 공짜'라고 우겨대길레 에라 먹고 떨어져라 하는 심정으로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뒤돌아서 나오는데 울컥 화가 치밀었다. 다시 헬스클럽으로 돌아가서 이름과 전화번호를 지워달라고 말하려 했으나, 그 여자는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헬스클럽 관계자도 아니고 그냥 잡상인이었던 모양이다. 치미는 화를 억누르고 사흘 쯤 지났을까? 아니나다를까 문자메시지가 한통 도착했다. "무료비비크림 증정, 피부관리 이벤트에 당첨" 됐다는 내용이었다. 한 번 속지 두 번 속나, 메시지를 삭제하고 수신거부 목록에 추가했다.
지금은 그래, 다소 삭았지만 그래도 왕년에는 얼굴에 모공이 보이지 않았다는 걸로 만족하련다.
"얘도 예전엔 얼굴에 모공이 안 보였거든."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었으나 내심 기분이 좋았다. 한때 내 피부가 그렇게 좋았던가? 아무렴 좋기야 좋았지, 들인 돈이 얼만데.
그러니까 이야기는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상물정 모르던 20대 초반, 길에서 만난 잡상인에게 한번 붙들렸다하면 허접스러운 영어 교재에서부터 수상한 스쿠알렌에 이르기까지 마냥 혹해 냉큼 사버리기가 일쑤였던 시절.
어느날 사촌들을 만나러 명동에 갔다. 길 한복판에서 깜찍한 의상을 차려입은 여성들이 사탕을 나눠주고 있었다. 놓칠새라 그쪽으로 달려갔더니 무슨 이벤트 중이라며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으라고 한다. 이벤트? 눈을 반짝이며 또박또박 적고는 의기양양하게 사탕을 받아 돌아왔다. 그것이 당시 새롭게 떠오르던 영업 술수였음은 까맣게 모른 채.
며칠 뒤 전화가 왔다. 무료 피부관리 이벤트에 당첨이 되셨으니 방문을 하라 한다. 피부 관리! 게다가 그곳은 제법 유명한 ㅇ그룹의 계열사였다. 나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좋아라 달려갔다. 당시 내 얼굴에는 사춘기 내내 났다 하면 짜고 뜯었던 여드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ㅇ그룹의 피부관리센터에서는 그런 내 얼굴에 정성스레 마사지를 해주고 피부 상태에 대한 진단까지 내려주었다. 그리고 시작된 그녀들의 립테크닉. 그제서야 나는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아직 탈출할 기회는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녀들의 말발은 너무나 강력했고 고운 피부를 갖고 싶었던 나의 욕망은 마지막 탈출기회를 저버렸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신용카드를 만들었다. 아마도 24개월이었을 것이다. 최장 할부 개월 수 만큼 죽죽 늘여서 결제를 했다. 그리고 2년 가까이 매주 한 번 씩 그곳에 가서 온갖 종류의 팩을 동원한 마사지를 받으며 아침 저녁으로는 10종 이상의 스킨, 로션, 세럼, 에센스, 크림, 화이트닝 따위를 얼굴에 발랐다. 과연 피부는 점차 좋아지기 시작했다. 몇달 만에 만난 동아리 선배가 나를 알아보지 못했고 친구들은 연신 내얼굴을 만지며 '완벽한 중성피부'라고 부러워했다. 참으로 악랄했으나 효과만큼은 확실했던 ㅇ그룹의 피부관리센터였다.
그렇게 2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자 환상적인 립테크닉을 구사하던 그녀들도 내 피부에 대해 더이상 토를 달지 못했고 그제서야 나는 그녀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완벽한 중성피부'는 그 뒤로도 몇 년간 유지되었고 만나는 사람들은 종종 내 피부를 칭찬했다. 그때마다 마음 속에선 '그럼, 들인 돈이 얼만데'하는 생각과 함께 ㅇ그룹의 피부관리센터에 대한 애증이 되살아나곤 했다.
한달 쯤 전이었던가.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데 헬스클럽 로비에서 웬 여자가 무료 비비크림 증정 행사라면서 샘플을 나눠주며 전화번호를 받고 있었다. 극구 사양하는데도 '정말로 공짜'라고 우겨대길레 에라 먹고 떨어져라 하는 심정으로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뒤돌아서 나오는데 울컥 화가 치밀었다. 다시 헬스클럽으로 돌아가서 이름과 전화번호를 지워달라고 말하려 했으나, 그 여자는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헬스클럽 관계자도 아니고 그냥 잡상인이었던 모양이다. 치미는 화를 억누르고 사흘 쯤 지났을까? 아니나다를까 문자메시지가 한통 도착했다. "무료비비크림 증정, 피부관리 이벤트에 당첨" 됐다는 내용이었다. 한 번 속지 두 번 속나, 메시지를 삭제하고 수신거부 목록에 추가했다.
지금은 그래, 다소 삭았지만 그래도 왕년에는 얼굴에 모공이 보이지 않았다는 걸로 만족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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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예전에 ㅇ계열사에 끌려가서 피부관리 1회받고 클렌징크림도 무료로 받고 그녀들의 설득을 끝까지 물리치고 3시간만에 풀려나 집으로 돌아온 적 있답니다. 이제 와서 님의 글을 보고 효과를 보셨다 하니 저도 모른척 속아볼걸..싶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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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시네요. 3시간을 버텨내시다니;;
경제적으로 여유가 된다면 한번 쯤 낚여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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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힛... 삼년전에.. 저두 저런 경험이 있다는.....
딱 갔는데 맛사지 해주고 어쩌고 저쩌고
화장실 간다구 하구;;;; 도망쳤어여 ㅋㅋ
헤헤; 즐거운 하루 되세여 ^_^-
그런 방법도 있었군요. 담에 걸리면 함 써먹어봐야겠어요. ㅎㅎ
너구리양도 좋은 하루 보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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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피부 좋더구만 뭘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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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모공이 보이잖아.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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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이기만 한 공짜는 없나봐요ㅋ 사실 그렇게 관리를 받아도 피부가 좋아지지 않는 사람이 (바로 이 댓글을 작성하며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데,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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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마흔이 넘으면 그 동안의 삶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하잖아요. 한살씩 먹을 수록 마냥 고운 피부보다는 지난 내 삶을 자랑스레 내보일 수 있는, 자신 있는 얼굴로 가꿔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르쇠님도 그렇게 가꿔가고 계시리라 생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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