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 즉 입고 먹고 자는 것1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일이다. 의식주만 해결하면 어떻게든 살 수 있고, 살기 위해서는 의식주만 해결하면 된다. 문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무 거나 입고, 아무 거나 먹고, 아무 데서나 자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시작된다.
오늘날 사회에서 이 같은 의식주의 가치는 돈으로 환원된다. 결국 돈 많은 자들이 잘 입고, 잘 먹고, 좋은 곳에서 잔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좀더 잘 입고, 좀더 잘 먹고, 좀더 좋은 곳에서 자기 위해 골몰하지만 어지간한 수입으론 그 수준의 의식주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더 나은 수준의 의식주를 위해 과도하게 신용카드를 긁고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고 대출을 받아 쓰다가는 신용불량자로 추락할 수도 있다. 한편 대충 입고, 대충 먹고, 대충 적당한 곳에서 사는 걸로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도 경제활동은 하지만 대부분 의식주를 대충 유지할 정도의 돈을 버는 수준에 그친다.
의식주는 인간의 삶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다.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각자가 만족하는 수준의 의식주를 유지하게 되면 이제 그 밖의 충분조건을 찾아 나선다. 취미나 공부, 운동 같은 활동으로 자신의 지적, 신체적, 감성적 수준을 높이고자 한다.2
'잘산다'는 말은 일반적으로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곳에서 자는 것, 즉 높은 수준의 의식주를 구가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잘'살지는 못하지만 '멋지게' 사는 사람도 있다. 가난 속에서도 평생을 공부에 매달려 마침내 높은 학문적 성취를 이뤄낸 학자,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 없어도 묵묵히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하며 작업에 매진하는 예술가, 정처 없이 세계를 떠도는 여행가와 같은 사람들이 대략 여기에 포함된다. 이 사람들의 삶에서는 의식주보다 그 외 충분조건들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많은 이들이 잘사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한편 멋지게 사는 사람을 동경한다.
여기서 우리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잘살 것인가, 멋지게 살 것인가.3
가령 자신이 '보통'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필요조건(의식주, x)과 충분조건(y)의 수치가 2, 실제 삶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수치가 3이라고 하자. 당신이 추구하는 x:y는 몇 대 몇인가?
잘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은 다르다. 잘 사는 것은 잘사는 것과 멋지게 사는 것의 '사이'에 있다. 스스로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을 느낀다면 그게 잘 사는 것이다. 하지만 잘사는 것도, 잘 사는 것도, 멋지게 사는 것도 모두 쉽지 않다. 어쩌면 우리는 잘 살기 위해서 지금도 아둥바둥하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위태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x:y의 비율을 스스로 꾸려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잘 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사회에서 이 같은 의식주의 가치는 돈으로 환원된다. 결국 돈 많은 자들이 잘 입고, 잘 먹고, 좋은 곳에서 잔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좀더 잘 입고, 좀더 잘 먹고, 좀더 좋은 곳에서 자기 위해 골몰하지만 어지간한 수입으론 그 수준의 의식주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더 나은 수준의 의식주를 위해 과도하게 신용카드를 긁고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고 대출을 받아 쓰다가는 신용불량자로 추락할 수도 있다. 한편 대충 입고, 대충 먹고, 대충 적당한 곳에서 사는 걸로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도 경제활동은 하지만 대부분 의식주를 대충 유지할 정도의 돈을 버는 수준에 그친다.
의식주는 인간의 삶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다.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각자가 만족하는 수준의 의식주를 유지하게 되면 이제 그 밖의 충분조건을 찾아 나선다. 취미나 공부, 운동 같은 활동으로 자신의 지적, 신체적, 감성적 수준을 높이고자 한다.2
'잘산다'는 말은 일반적으로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곳에서 자는 것, 즉 높은 수준의 의식주를 구가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잘'살지는 못하지만 '멋지게' 사는 사람도 있다. 가난 속에서도 평생을 공부에 매달려 마침내 높은 학문적 성취를 이뤄낸 학자,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 없어도 묵묵히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하며 작업에 매진하는 예술가, 정처 없이 세계를 떠도는 여행가와 같은 사람들이 대략 여기에 포함된다. 이 사람들의 삶에서는 의식주보다 그 외 충분조건들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많은 이들이 잘사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한편 멋지게 사는 사람을 동경한다.
여기서 우리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잘살 것인가, 멋지게 살 것인가.3
가령 자신이 '보통'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필요조건(의식주, x)과 충분조건(y)의 수치가 2, 실제 삶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수치가 3이라고 하자. 당신이 추구하는 x:y는 몇 대 몇인가?
(1) x;y=2:1물론 이처럼 간단하게 도식화할 문제는 아니다. '보통' 수준이라는 기준도 모호한다. '0'은 필요 혹은 충분조건의 '전무'를 의미하는데 어떤 사람도 그렇게 살 수는 없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3)의 생활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1) 또는 (2), (4)의 삶을 살리라 다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도식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대략적인 모양새를 의미할 뿐이다.
(2) x;y=1:2
(3) x;y=3:0
(4) x;y=0:3
잘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은 다르다. 잘 사는 것은 잘사는 것과 멋지게 사는 것의 '사이'에 있다. 스스로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을 느낀다면 그게 잘 사는 것이다. 하지만 잘사는 것도, 잘 사는 것도, 멋지게 사는 것도 모두 쉽지 않다. 어쩌면 우리는 잘 살기 위해서 지금도 아둥바둥하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위태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x:y의 비율을 스스로 꾸려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잘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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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사는 것보단 잘 사는 것이 주관적인 것이라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많은 사람들은 잘살기보단 잘 살거야...라고 말합니다. 잘사는건 비교적 가시적인 것이라 노력하면 못할 것도 아니라만 잘 사는 것은 그야 말로 세상에서 자신에게 가장 엄격한 자기자신을 만족시키며 살아야 하니 훨씬 어렵고 평생 부족함 없는 충족감은 느끼기 힘들지 않을까요?...ㅎㅎ 오랜만의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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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자신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갖고 계시는군요. 전 그냥 지금도 잘 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음.. 그래서 발전이 없는 건가 ㅡ.ㅡ;;
따사로운 봄날입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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