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죽일 놈의 것들
Posted 2008년 02월 18일 10시 01분, Filed under: 일상인터뷰를 하러 다닐 때, 처음 두달 동안엔 작년에 박기도군이 사준 몰스킨과 볼펜만 달랑 들고 다녔다. 근데 말하면서 생각하면서 받아적기까지 하려니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상대방의 말을 받아쓰는 사이에 대화가 끊어지면 형언할 수 없는 어색함이 감돌았고, 인터뷰가 늘어졌고, 시간도 늘어졌다. 후지디 후진 MP3을 들고 다니며 녹음을 시도했다. 말 그대로 후지디 후진 MP3이라 녹음 능력도 시원잖았다. 그래서 보이스리코더를 지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그놈의 기계들이 예상보다 훨씬 비싸더란 말이다. 10만원을 넘어가지 않는 게 거의 없었다. 개중에 6만 얼마짜리 성능 좋아 보이는 것을 발견해서 어쨌거나 질렀다. 녹음 감도 좋고 배터리도 오래 가고 디자인도 흉하지 않았다.
지난 주 목요일, 그러니까 '레귤러사이즈 피자 한 판 달랑 먹고 헤어졌던' 발렌타인데이에 취재를 하러 갔다. 2시간 반 동안 계속된 회의를 녹음했다. 사회자의 마이크 앞에 보이스리코더를 가져다놓고 나는 노트북으로 주요 내용만 기록했다.
보이스리코더에는 기특하게도 '긴 파일 자르기' 기능이 있다. 200분 가까이 되는 녹음 파일을 화제별로 뚝뚝 끊어가며 따로 저장했다. 그 과정을 7번 정도 반복하자 왠 잡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녹음된 내용을 들으려고 재생 버튼을 누르면 약 5초간 찌직찌직끼익끼익 귀를 괴롭히는 기계음을 뿜어냈다. 앞의 내용을 다시 들으려고 앞으로 돌렸다가 다시 재생하면 10초간 끼릭찍지직지직끼익 더 심하게 잡음이 났다. 10초 앞의 내용을 듣기 위해 10초 앞으로 돌리면 10초 동안 끽끽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앞으로 돌리기 전에 들었던 그 내용이 다시 나왔다. 10초 앞의 내용을 듣기 위해서 20초, 30초 앞으로 돌려야 했다.
컴퓨터로 옮겨서 듣기로 했다. 컴퓨터로 옮기면 뭔가 해결 방법이 생길 것 같았다. 그런데 아뿔싸, 비스타용 드라이버는 지원이 안 된단다. 그래서 짱구1에 드라이버를 설치하고 보이스리코더를 연결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제조사의 홈페이지에 가보았다. 고객 게시판에는 '서비스 이 따위로 할테냐', '열불난다' 하는 원성의 글들이 가득했다. 나는 그제서야, 아뿔싸, 잘못 샀다는 후회가 들었다. 고객 게시판에 덩달아 글을 남겼지만 관리 상태로 봐선 언제 답변글이 달릴 지 예측불허. 결국 다시 그 끼익끼익찍찍지직하는 기계음을 들어야 했다. 차라리 한 마리 모기였다면 지긋이 압사시켜버릴 것을, 내 돈 주고 산 물건이라 함부로 부수지도 못한다. 이 죽일 놈의 기계.
감기에 걸렸다. 어떤 다른 기색도 없이 책상 위로 맑은 콧물이 한 방울 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알았다. 내가 감기에 걸렸다는 것을. 원인은 아마도 백담사일 것이다. 올 겨울 들어 처음 드는 감기다. 책상 위로 콧물을 뚝뚝 흘리며 일을 한다. 다름 아닌, 발렌타인데이에 취재했던 회의 기사다. 끽끽 거리는 소리를 견디며 겨우 녹취를 모두 풀고보니 분량이 무려 50장이다. 어쩔 수 없다, 다시 밤을 샌다. 목요일 밤, 금요일은 백담사에 갔고, 토요일 밤, 일요일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 일요일 아침에 두어시간 눈을 붙였고, 오늘 새벽 책상에 엎드려 30분 정도 쪽잠을 잤다. 책상 위에 휴지가 쌓여가기 시작했고 콧구멍 주위가 쓰라려오기 시작한다. 이 죽일 놈의 감기.
아침 9시, 겨우 마감을 마치고, 이제 뭐하지 하는데 마음 한 편이 더부룩하다. 급하게 마감을 한 날은 늘 그렇다. 뭔가 빠뜨렸을 것만 같고 뭔가 잘못 썼을 것만 같은 불안한 느낌, 하지만 다시 열어 확인해보긴 싫은 비겁한 마음. 오늘 신문 1면 주요 기사엔 내가 좋아라하는 성한용 선임기자의 글이 실려 있다. 어서 펴서 읽어보고 싶은데 그 더부룩한 마음이 꿍 하고 누른다. 마감 후 나를 게을러지게 만드는 더부룩함이다. 이 죽일 놈의 마감.
- XP가 설치되어 있는 만 5세 짜리 데스크탑 컴퓨터, 주료 사용하는 노트북에는 비스타가 설치되어 있다.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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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사 정말 뭐라고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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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상]
LCD창에 "ERROR" 표시됨
[조치]
제품을 포맷-초기화 하여야 합니다.
주의: 포맷을 하면 녹음된 내용이 모두 삭제됩니다.
"
이런 센스는 어디서 가져 오는건지;;;
이 죽일놈의 센스쟁이들;;
쓰신글은 잘 봤습니다;;-
정말이지, 이렇게 무책임한 서비스 행태를 보고 있자면 뚜껑 열려요 ㅡ.ㅡ;;
소비자보호원 같은 데 신고하면... 귀찮아지겠죠.
이 죽일 놈의 귀차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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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게 잘 샀다고 좋아했잖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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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뒤늦게 '아뿔싸' 땅을 치는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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