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과 합법, 개인과 조직 사이 - 촛불시위의 두 가지 딜레마
Posted 2008년 05월 26일 11시 04분, Filed under: 생각일몰 이후에 구호를 위치면 불법이다.
정치구호가 담긴 피켓을 들고 있으면 불법이다. 하지만 바닥에 내려놓는 것은 괜찮다.
촛불시위가 지난 한달간 '촛불문화제'라는 이름을 달고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침묵시위'로 일관했던 이유입니다. 현행 집시법의 테두리 안에서 어떻게든 정권에게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청계천의 경우는 조금 달랐지만, 지날 달 제가 참가했던 여의도 촛불문화제의 모습은 그랬습니다.
일부에서 확성기로 구호를 선창하거나 '미친소 너나 먹어라' 하는 노래를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주최측에서는 그들을 '알바'로 지목하며 참가자들에게 절대 침묵으로 일관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밤 11시경 집회장소를 빠져나오며 조금 회의가 들었습니다. 이런 식의 저항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국민이 뭐라 하든 말든, 언론이 뭐라 하든 말든, 콧방귀도 뀌지 않고 제 하고 싶은 일 다 하는 이명박에게 이 방법이 과연 먹힐까. 합법적으로 하자니 씨알도 안 먹히고, 좀더 강경하게 하자면 불법 시위로 낙인 찍히는 현실, 이것이 제가 바라보는 촛불시위의 첫번째 딜레마입니다.
지난 주말 서울은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죄스럽게도 저는 평온하게 스터디를 하고 학회에 참석하고 삼겹살을 구워 먹고 야구 중계를 보고 맥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고서야 경악했습니다. 조악한 저의 어휘력으로는 '막장'이라는 말 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몇몇 사진은 80년 광주의 풍경을 방불케 합니다.
시위대의 불법행위를 문제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할 거면 합법적으로 할 것이지 왜 불법행위를 해서 화를 자초하느냐고, 제법 얼르는 말투입니다. 시위대가 청와대 방면으로 가두시위를 진행한 것이 발단이었다고 합니다. 경찰이 길을 막자 시위대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도로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고,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말합니다. 결국 시위대를 '도로 점거'라는 불법행위로 내몬 것은 공권력이었습니다. 합법적으로 하고 싶어도 불법 시위가 되고 마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두번째 딜레마는 개인이냐 조직이냐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와 보수언론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에 '배후'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다음(daum)의 안티 이명박 카페 또는 미친소닷넷의 운영자가 어디어디 정당, 혹은 어느어느 단체 소속이라는 이유로 촛불시위에 참가한 시민들 전체가 그들의 선동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식으로 치부해버립니다. 전 국민이 자신들을 향해 강렬하게 반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거겠죠.
그래서 정부와 보수언론의 '배후설'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촛불시위 주최측은 철저하게 '개인'의 '자발적'인 행동임을 강조합니다. 안티이명박 카페는 "정치적 정파와, 종교적인 선호나 관련을 일체 배제한다"고 아예 정관에 못을 박았습니다. 촛불시위 현장에 어떤 단체의 깃발도 눈에 띄지 않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조직'없는 '개인'으로서의 행동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게는 수 천, 많게는 수 만 명의 사람이 모이는 집회 현장에서, 더군다나 지난 주말처럼 격해지는 상황에서, 중앙에서 이들을 통솔하고 지휘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상당한 혼란을 초래합니다. 안티이명박 카페나 미친소닷넷과 같은 '주최측'이 있다는 사실 자체로도 어쩌면 촛불시위는 이미 조직의 틀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릅니다. 기왕에 시작된 일이고 정권이 이렇듯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모습을 보면 조직을 정비해서 더 강경하게 대처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그런 움직임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조직이 생기게 되면 정권의 타겟이 그만큼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조직의 간부와 구성원을 잡아들여 조직을 와해시키려들 것입니다. 조직을 구성해서 행동력을 증대시킬 수 있지만, 한번 와해되면 그것을 다시 일으키기는 어렵습니다. 정부의 감시망을 피해 조직에서 이탈하는 사람들이 속출할 것이고 최악의 경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움직임 자체게 사그러들 수도 있을 겁니다.
정부는 집시법과 배후론의 두 가지 올가미를 갖고서 촛불시위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제공하는 가이드라인을 따라가기만 해서는 촛불시위는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현행 집시법을 개정하는 한편, 자발적인 국민의 참여에 근거 없는 배후론을 들이대는 정부와 보수언론, 기성세대의 생각이 바뀌어야만 합법적이고 자발적인 촛불시위가 계속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해결방안은 지금의 현실로서는 불가능해 보이는군요.
http://news.kbs.co.kr/article/society/2 ··· 7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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