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for '한자'

1 POSTS

  1. 2008년 03월 11일 울렁증, 굴욕 그리고 그 후 (7)

울렁증, 굴욕 그리고 그 후

Posted 2008년 03월 11일 23시 03분, Filed under: 일상

옛날 이야기 하나.

나는 6년 전에 대학원에 입학해서 석사과정 2년 동안 학과 조교로 활동했다. 일주일에 한두번 과사무실에 출근하는 대가로 파격적인 장학금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운이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매일같이 교차되는 희비와 애환으로 마음이 퍽 괴롭기도 했었다.
1학기 기말고사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부 전공과목의 시험 감독으로 나 혼자 들어가게 되었다. 해당 과목의 담당 교수님은 전날 나에게 미리 시험문제를 건내주셨다. 봉투 속에 꼭 봉해서. 시험문제는 철저히 보안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경우 강의실에 들어가서야 건내받은 봉투를 개봉하는 게 관례였다. 강의실에 들어가서 학생들에게 시험지를 나눠주고 문제가 들어 있는 봉투를 개봉했을 때, 나는 조금 당황했다. 문제에 한자가 섞여 있었다. 新羅, 佛敎, 鄕歌와 같은 어렵지 않은 단어들이었지만, 막상 칠판에 그것을 옮겨적으려니 울렁증이 일기 시작했다. 그냥 한글로 적을까, 잠깐 고민도 했지만 어쨌거나 교수님이 주신 문제를 '그대로'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 한 자 한 자 조심스럽게 문제가 적혀 있는 쪽지를 확인해가며 천천히 옮겨 썼다.
그때 강의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그냥 한글로 써라~"
그리고 이어지는 작은 웃음소리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다행히도 내 얼굴은 칠판을 향하고 있었고, 나는 끝까지 동요하지 않은 척하며 문제를 옮겨적었다. 학생들 중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들도 꽤 있었다. 한두 학번 위의 남자 선배들은 아직 학부에 다니고 있었다. 누구의 목소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난 그들과 그리 친하지 않았으니까. 그날 시험 감독은 무사히 마쳤지만 중학교 수준의 한자를 더듬더듬 칠판에 옮겨적던 나의 모습, 그리고 강의실 안에서 들려오던 비웃음은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 나를 괴롭혔다.

우스갯소리로, "공대생은 계산기 없으면 바보"라고들 한다. 한문 공부하는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모르는 글자가 나오면 그때 그때 사전에서 찾아보면 그만이다. "갈지[之]", "다닐행[行]"이라고 일일이 외지 않는다. 한자의 뜻은 아주 많고 그게 문장 속으로 들어가면 또 그때마다 쓰임이 달라진다. 사전을 찾아 꼼꼼히 확인하고 거기에 맞는 뜻을 찾아가야 한다. 단답형으로 음과 훈을 외우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이것이 내가 한자능력검정시험을 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전만 뒤적이다보니 읽을 줄은 알아도 쓸 줄은 모르는 병폐가 생겼다. 막상 佛을 쓰려 하면 佛인지 彿인지 헷갈리고, 李를 쓰려 하면 李인지 季인지 선뜻 그 모양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년부터 모르는 글자, 헷갈리는 글자를 사전에서 찾아볼 때마다 노트에 서너번 씩 적고 있다. 인명, 지명에나 쓰이는 시덥잖은 글자들에서부터 매번 봐도 헷갈리는 글자, 이건 며칠 전에 분명히 봤는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 글자, 도저히 모르겠어서 찾아봤더니 황당하게도 너무나 쉬운 글자에 이르기까지, 척 봐서 모르는 글자면 무조건 노트에 옮겨적고 사전을 찾아서 다시 뜻을 옮겨적는다.
이러다보니 작업 속도도 자연 느려진다. 가끔 '꼭 이렇게까지 해야되나'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날의 굴욕을 떠올리며 적고 또 적었다. 첫째로는 읽을 줄만 알고 쓸 줄은 모르는 병폐를 고칠 수 있고, 둘째로는 한자가 손에 익어 글씨의 모양새가 좋아지니 그만큼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믿으며.

오늘 한문소설에 관한 이론서 한권을 다 읽었다. 400쪽 짜리 책을 다 읽는 데 꼬박 한달이 걸렸다.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한자가 무척 많았다. 그 책을 읽으면서도 '척 봐서' 뜻을 알 수 없는 글자는 모조리 다 노트에 적었다. 때아닌 깜지를 쓰고 있다는 기분도 들었지만, 하루 공부를 마치고 그날 새까맣게 옮겨적은 글자들을 훑어 볼 때의 그 뿌듯함이란.

내가 뭐 얼마나 대단한 한자 도사가 되려는 건 아니다. 그저 내 머릿속에 한번 들어온 정보를 최대한 오랫동안 끌어안고 싶다는 욕심에서다. 6년전 그날의 일을 설욕하려는 목적도 없지 않지만.
하지만 아직도 갈길은 멀고 나는 아직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쉼 없이 경계하고 권면해야만 하루 빨리 일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요즘 공부를 좀 열심히 했더니 한문 번역투의 문장이 적지 않습니다.
오호라, 장차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2008년 03월 11일 23시 03분 2008년 03월 11일 23시 03분


Recent Posts

  1. 나의 사진 편력1: 2002~2003
  2. 저희만 행복해서 죄송합니다
  3. 서른살 생일 선물
  4. 소설을 읽었다
  5. 불법과 합법, 개인과 조직 사이 - 촛불시...
  6. 전화 잘못 거셨습니다
  7. 평화+통일+가정=?
  8. 어린이라서 힘든 거다
  9. 잘 살고 있나요?
  10. 나도 왕년엔 얼굴에 모공이 안 보였다네

Recent Comments

  1. 우냥~ 이 몸은 갠적으로 캐논 50D를 춫현... 뵹수 2008년
  2. 제가 와니님 홍대 바우하우스 에서 처음... eggleg.net 2008년
  3. 축하해요. 5월의 신부님~ ^- ^)/ 오래 오... eggleg.net 2008년
  4. 아녜요~ 지금이라도 댓글 남겨주셔서 얼마... 은영 2008년
  5. 감사합니다~ 근데 5월의 신부라고 하면... 은영 2008년
  6. 한동안 정신이 없어 늦었습니다. 생일 축... silverline 2008년
  7. 결혼 축하드려요.^^ 모든 이의 꿈인 5월... silverline 2008년
  8. 감사합니다~ ^^ 조만간 답방 갈게요~ (이... 은영 2008년
  9. 와! 축하드립니다. 레디오빠 2008년
  10. 아이고~ 감사합니다. ^^ 은영 2008년

Calendar

«   2009년 01월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45

23

-15 days

today : 11

Creative Commons Lice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