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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년 11월 14일 Girl Talk (4)

Girl Talk

Posted 2007년 11월 14일 23시 05분, Filed under: 일상

화요일 오전이면 집에서 스터디를 한다. 후배 조와 둘이서 고문진보를 천천히 읽고 있다. 둘다 한문 실력은 어설프기 짝이 없어서, 사전과 인터넷을 뒤져가며 겨우겨우 자구나 풀이하는 정도다. 선생님은 이런 우리를 두고 "소경과 귀머거리"라고 하셨다. 뭐, 지당하신 말씀.
어제 오전 스터디가 끝나고 후배 조와 둘이서 김치찌게를 끓여 조촐하게 점심을 해먹고, 디저트로 감을 깎아 먹고 있는데 노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맹자 스터디를 새로 시작하기로 했기 때문에 그 얘기를 하겠거니 했는데 대뜸,
"좀전에 문자 보냈는데 못봤어?"
란다. 아니나다를까 문자가 와 있었다.
은영, 지금 어디야? 갑자기 낮술 생각나네. ㅋㅋ
이런, 전혀 의외였지만 무척 반가운 내용이었다. 후배 조까지 합세해서 드디어 술판을 벌이게 되었는데 대낮에 딱히 들어갈 술집이 없어서 우리집에서 놀기로 했다. 지하철역까지 노언니를 마중나가서 들어오는 길에는 맥주 페트 2병과 골뱅이와 소시지를 샀다. 냉장고 있던 노가리를 굽고, 소면을 삶았다. 소시지도 뽀득뽀득하게 구워내니 어느새 화려한 안주가 한 상 차려졌다.
노언니는 술을 잘 못 마시고, 후배 조와 알게 된지는 겨우 반년이었기 때문에 사실 두 사람과 술을 마셔본 일은 없었다. 최근 몇달간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함께 술 마시기를 매우 기피해왔기 때문에 사실은 두려웠다. 페트 두 병을 사면서도 그걸 다 먹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갖지 않았다.
노언니는 요즘 연애중이다. 학교 일로 고민이 많지만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눈동자는 눈부셨다. 후배 조는 뭔가 정열적인 사랑을 원한다 했고, 나는 늘 그렇듯이 남친님 자랑을 늘어놓았다. 1.6리터짜리 페트 두 병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잔을 거의 비울 무렵, 우리는 2차를 가기로 했다. 마침 노언니가 학교앞 벳부 사장님을 잘 안다고 했다. 5시쯤 벳부에 도착했다. 손님은 아무도 없었고 사장님이 개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장님은, 얼핏 보면 알바생으로 착각할 정도로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분이었다.
우리는 알탕과 매취순을 주문했고 서비스 안주로 삼치가 나왔다.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었다. 달콤한 매취순을 끊임없이 홀짝거리느라 나는 금새 취했고 분위기는 더욱더 무르익어 마침내 진실게임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진실게임은 20대 초반 무렵 한번인가 해본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거참 웃기는 게임이라고 생각해서 진실을 말하지는 않았었다. 오, 그런데 어제는 달랐다. 부끄러운 진실을 밝히면서도 부끄럽지 않은, 완전소중한 Girl Talk의 진수를 느꼈달까.
아마도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을 거다. 노언니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간다며 먼저 일어났고 나와 조는 노래방으로 향했다. 나는 만취 상태였다.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지경이니까. 전화가 왔다. 주언니였다. 취한 정신을 최대한 추스르며 주언니와 통화를 했다. 내일 시간 괜찮으면 시험 감독 아르바이트 하지 않을래, 하는 내용이었다. 좋아요, 좋아! 후배 조도 함께 가기로 했다. 주언니는 담당자인 ㅅ대 국문과 조교의 핸드폰 번호를 문자메시지로 남겨주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숙취 때문에 울렁거리는 속을 다스리려고 라면을 끓여 먹었는데 라면을 먹으니 속이 더 안 좋아졌다. ㅅ대는 꽤 멀다. 후배 조와 9시에 만나기로 통화를 하고 나니 옷 입을 게 걱정이었다. 시험 감독이면 깔끔하게 입어야겠지. 울퉁불퉁한 살을 보정속옷으로 가리고 살이 쪄서 꽉 끼는 셔츠와 바지를 걸치고 불편하게 집을 나섰다. 후배 조는 의외로 편한 차림이었다. 시험 감독인데?
"감독이 아니라 채점이에요."
후배 조는 불편한 차림의 내 모습이 웃긴 모양이었다. 에휴, 아침에 괜히 고민했네. 참 그나저나 조교 번호를 어제 받았으니 연락을 해봐야겠네.
"조교가 아니라 교수님일걸요."
그럴리가! 문자메시지를 다시 확인해보니 어이쿠, ㅅ대 국문과 조 아무개 교수님이었다. 이런 정신으로 어제 주언니와 통화를 했단 말인가. 다음에 만나면 해명이라도 해야되겠다.
어쨌거나 아르바이트는 무사히 마쳤다. 집에 오는 길은 버스 환승놀이로 모험을 해보았는데 1시간이 훨씬 넘게 걸렸다. 종로에서 왕십리까지만 40분정도 걸린 것 같다. 시청에서 지하철을 탈 것을, 그러나 오랜만에 신은 구두가 너무 불편했다. 이런저런 여파때문인지 지금은 감기 기운이 도져서 또 말이 아니다. Girl Talk의 여파는 엄청나구나.

남친님은 예비군 훈련중이시다. 아이, 보고파라. 그래도 올해가 마지막이니 조금만 참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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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4일 23시 05분 2007년 11월 14일 2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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